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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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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죽도가 있는 정물 요약정보 및 구매

작품코드 qr2674
작가 빈센트 반 고흐
작품크기 50 x 63cm (15호)
재료 Reproduction on canvas
액자 수지액자
현재가 170,000원 (시작가:170,000원)
배송비 무료 - 택배 기본배송비이며 액자유무,작품크기, 지역에 따라 비용이 추가될 수 있습니다.

작품 정보

작품 상세설명



'이 남자는 미치게 되거나, 아니면 시대를 앞서가게 될 것이다.'
- 카미유 피사로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네덜란드의 화가.
인상파와 일본 우키요에의 영향으로 강렬한 색채와 격렬한 필치를 사용하여
자신만의 작풍을 확립하였다.
비극적일 정도로 짧은 생애였음에도 불구하고 빈센트 반 고흐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가 중 하나다.
그의 작품은 20세기의 미술운동들, 특히 야수주의와 독일 표현주의의 발전에 있어서 토대를 제공했다.

풍경화와 초상화를 그린 후기인상주의 화가.
초기 화풍은 농부들을 강렬하면서도 어두운 분위기로 묘사하였으나
후기에는 임파스토 기법의 표현주의적 화풍을 만들어 냈다.

지금은 온 세계가 그의 작품을 높이 평가하지만 그의 정열적인 작품이 생전에는 끝내 인정받지 못했다.
그가 위대한 화가라는 인상을 처음으로 세상사람들에게 준 것은 1903년 유작전 이후였다.
따라서 그는 20세기 초의 야수파 화가들의 최초의 큰 지표가 되었다.
그의 작품은 네덜란드에 가장 많이 있는데,
40점 가까운 자화상 이외에도 '빈센트의 방','별이 빛나는 밤',
'밤의 카페','삼(杉)나무와 별이 있는 길' 등이 유명하다.


1853년 3월 30일 네덜란드 프로트 준데르트에서 출생
1869년 사관후보생이 숙부가 운영하는 구필화랑 헤이그 지점에서 판화를 복제해 판매하는 일을 시작
1875년 구필화랑 파리 지점에 취직. 미술관을 다니고 책과 성경을 탐독하는 생활을 함
1876년 구필화랑을 관두고 영국에 잠시 머물다 고향인 네덜란드로 돌아감
1878년 목사가 되려고 신학 공부를 하였으나 포기. 
           브뤼셀에서 3개월간 복음 전도사 교육을 받았으나 임명되지 못함
1883년 작품활동 시작
1885년 '감자 먹는 사람들'완성
1888년 프랑스 아를로 이주해 '노란집'을 예술가 공동체로 만들려 시도
           폴 고갱과 동거.
           '아를르의 포룸 광장의 카페 테라스', '해바라기' 등 많은 작품 제작
1889년 파리로 생레미에 있는 정신병원에 입원,
           이곳에서 '별이 빛나는 밤'제작
1890년 권총으로 자살을 시도. 사흘 간 앓다가 7월 29일에 사망






협죽도가 있는 정물

제작연도 : 1888년
기법 : 캔버스에 유채
크기 : 73 x 60cm
소장처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제작배경 및 미술사적 의의
반 고흐의 작품에선 과감한 붓터치 못지않게 강렬한 색채 또한 주목할만하다.
반 고흐 작품의 매력인 색의 대비와 조화는 1880년대 초 그가 색채에 관심을 가지게 되며 시작되었다.
1882년, 동생 테오(Theodore van Gogh)에게 쓴 편지에서 빈센트는 자신이 그린 목초지광경에 대해 얘기했다.
여기서 그는 색채표현에 대한 강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 그림에서 가장 중요한 건 하늘이 보여주는 갖가지 색채와 색조이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내 안에서 전에는 느끼지 못한 색채의 힘이 꿈틀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아주 거대하고 강력한 어떤 힘이었다.'
그는 이 글에서 자신이 발전하고 있으며 석 달 뒤에는
동생에게 이전과 달라진 작품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1886년 파리로 거처를 옮기며 반 고흐는 꽃병 연작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가 1886년부터 1888년까지의 파리시기에 제작한 꽃 그림은 40점이 넘는다.
파리시기 이후 아를에서도 그는 유명한 <해바라기(Sunflowers)>연작을 그리는 등
꽃을 그리는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그가 이토록 많은 꽃 정물화를 제작한 이유는
존경하는 색채의 대가 아돌프 몽티셸리((Adolphe Joseph Thomas Monticelli, 1824-1886))의 꽃 그림들의 영향이 크다.
반 고흐는 몽티셸리의 강렬한 색채를 다루는 기술을 자신 또한 작품 속에서 표현하길 원했다.
이를 위한 연습으로 반 고흐는 일련의 꽃 그림들을 제작했다.
그가 1888년에 테오에게 쓴 편지에서 반 고흐가
몽티셸리의 작품 속 색채배치를 자신의 것과 동일시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이 편지에서 반 고흐는 몽티셸리를 채색을 아주 잘한 화가이며
색조와 톤을 아주 세심하게 계산하여 그렸다고 칭찬했다.

또한 자신 역시 작품을 제작할 때 여섯 가지 주요색인 빨강, 노랑, 오렌지색, 라일락색, 초록색을
조화롭게 사용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고 이런 작업을 끝낸 후엔 으레 몽티셸리를 떠올린다고 했다.
<협죽도가 있는 정물>는 반 고흐가 색채에 대한 관심이 높았으며
꽃 그림을 다수 그린 1888년에 제작된 것으로
이 작품을 통해 그가 표현하고자 한 색채배치를 살펴볼 수 있다.


표현기법
<협죽도가 있는 정물>는 반 고흐가 아를(Arles)에 머물던 시기인 1888년도에 제작되었다.
아를시기에 반 고흐는 눈부신 노란색, 붉은색, 밝은 녹색, 푸른색을 사용해 보색 대비효과를 나타내려 했다.
<협죽도가 있는 정물>에서는 그의 아를 시기 작품 <해바라기>와 마찬가지로
강렬하고 밝은 색채들의 조화를 볼 수 있다.

화면 중앙의 녹색 잎과 주황색 꽃은 서로 색채대비를 이루고 있다.
꽃병의 푸른색은 배경과 테이블의 책에 쓰인 노란색과 부딪혀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반 고흐의 탁월한 색채대비를 통해 작품의 주제인<협죽도가 있는 정물>는 강렬하고 생명력 넘치는 효과를 얻었다.

반 고흐는 화면에서 테이블과 꽃병을 오른쪽으로 배치했다.
그러나 잎을 왼쪽 방향으로 길게 뻗게 그려 화면의 균형과 동시에 율동감을 부여했다.
이렇게 한쪽으로 쏠리는 구성과 이를 보완하는
다른 사물의 배치를 통한 긴장감과 균형은 그의 아를시기 정물화에서 주로 나타난다.



작품구성은 3가지 타입으로 주문 가능합니다.
물론 작품 크기도 원하시는 사이즈로 주문 가능합니다.



1. 고 해상도의 발색이 원작에 가까운 Reproduction 작품.

2. Reproduction 작품위에 거장의 손길이 들어간 마띠에르가 느껴지도록
  작품에 부분적으로 미술재료로 질감 처리한 작품. (※가격별도문의)

3. Reproduction 작품위에 원작의 숨결을 느낄수 있도록 캔버스 전체에
  유화물감으로 섬세하고 정교하게 원작을 재현시킨 작품. (※가격별도문의)


액자도 명화의 품격에 맞게 앤틱한 고급수지 액자 부터 심플하고 모던한 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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